구마라즙은 중국 불교의 뿌리를 세운 위대한 번역가이자 철학자입니다. 중앙아시아에서 태어난 그는 장안에서 대승경전을 번역하며 중국 불교의 교리 체계를 확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의 생애, 번역 철학, 역사적 영향력을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제1장: 중앙아시아에서 태어나 불교의 다리를 놓다
구마라즙(鳩摩羅什, Kumarajiva, 344~413)은 인도와 중국 문명의 접점이라 할 수 있는 중앙아시아의 쿠차(Kucha) 왕국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인도인 브라만 출신으로 깊은 학식을 갖추었으며, 어머니는 불교 신심이 깊은 왕족 출신이었다. 이처럼 유복하고 학문적인 배경 속에서 자란 구마라즙은 어린 시절부터 불교 경전뿐 아니라 힌두 논리학, 산스크리트어, 프라크리트어, 중국어 등 다양한 언어를 익히며 다문화적 소양을 키웠다.
그는 젊은 나이에 인도 불교의 중심지인 나란다를 비롯해 여러 지역에서 수행과 학문을 병행하였고, 이후 타림 분지 일대에서 불교를 널리 알리며 명성을 떨쳤다. 구마라즙의 사상적 깊이와 논리적 설득력은 단순한 승려를 넘어 불교 철학자이자 언어학자로서의 위상을 드러내는 데 충분했다.
하지만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북중국을 장악한 전진(前秦)의 부견(苻堅)은 불법 전파의 중심으로 삼기 위해 구마라즙을 납치하다시피 데려가 장안으로 이동시켰고, 이후 후진(後秦)의 요흥(姚興)에 의해 본격적인 번역 사업이 시작되었다. 이처럼 구마라즙은 시대의 격동 속에서도 불교의 교리와 언어를 통합하는 다리 역할을 하며 불교 확산의 전기를 마련했다.
제2장: 번역의 기술과 철학 – 불경을 ‘읽히는 말’로 바꾸다
구마라즙의 가장 큰 업적은 수많은 대승 경전을 중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번역은 단순한 문자 치환이 아니었다. 당시 많은 번역자들은 직역 위주의 해석을 고집했지만, 그는 의미를 전달하는 데 있어 ‘의역’을 중시했다. 즉, 산스크리트어의 문장을 중국 문화와 언어 환경에 맞추어 재해석하고, 독자들이 경전의 의도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문맥을 다듬었다.
대표적인 번역 경전으로는 『금강반야바라밀경』, 『묘법연화경』, 『유마경』, 『중론』, 『백론』, 『십주비바사론』 등이 있다. 특히 『중론』은 인도 불교의 중도사상을 중국 철학 체계 안에 소개한 결정적 텍스트로, 후대 선종과 천태종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구마라즙은 이 경전에 직접 주석을 달며, 논리와 사상을 체계화하는 데에도 힘썼다.
그는 번역 시 “오역(誤譯)”을 경계하고, 수십 명의 제자들과 함께 경전의 정확성과 독해력을 확인하는 철저한 교감 절차를 거쳤다. 이를 통해 중국 불교는 더 이상 외래 사상에 머무르지 않고, 자국 언어와 사유 체계에 맞게 소화되고 정착될 수 있었다.
제3장: 구마라즙의 역사적 의미와 불교사적 유산
구마라즙이 중국에 남긴 유산은 단순히 번역 경전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제자 교육에도 적극적이었으며, 체계적인 불교 교리 교육을 통해 중국 승려들의 학문적 수준을 끌어올렸다. 대표적인 제자 승조(僧肇)는 ‘불생불멸’ 사상과 ‘공(空)’ 철학을 더욱 발전시켜 중국 불교 철학의 수준을 한 차원 높였고, 도생(道生)은 법화경 사상을 계승하며 불교 대중화에 힘썼다.
구마라즙의 번역은 이후 당나라 현장(玄奘), 의정(義淨)과 같은 대역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으며, 중국 불교의 교리 전통과 학술 체계를 만드는 데 근간이 되었다. 또한 그의 번역 철학은 이후 동아시아 불교의 전개 방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 일본과 한국의 경전 번역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종합하면 구마라즙은 불교 문헌을 단순히 옮기는 번역가가 아니라, 철학자이자 언어학자이며 문화의 중개자였다. 그의 삶과 작업은 불교가 단지 외래 사상이 아닌, 한 문명권의 정신적 기반으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가 없었다면, 중국 불교는 현재와 같은 사상적 깊이와 문화적 뿌리를 형성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구마라즙의 번역 경전은 많은 불자들과 연구자들에게 읽히고 있다. 그의 경전은 단지 종교적 텍스트를 넘어, 인간 존재와 공(空), 해탈의 길을 사유하게 하는 철학적 유산이다. 구마라즙은 시대를 넘어, 언어와 문명을 넘어 불법을 전달한 가장 위대한 메신저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