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禪宗)은 동아시아 불교에서 가장 독창적인 수행 전통 중 하나입니다. 중국에서는 달마(達磨)에 의해 선종의 씨앗이 뿌려졌고, 한국에서는 혜량(慧亮)을 비롯한 고승들이 그 사상을 수용하며 한국적 수행불교의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중국 선종의 창시자 달마와 한국 선종 수용의 초기 인물 혜량을 비교해보며, 선종이 한중 양국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어떤 수행 철학으로 발전해갔는지 그 ‘싹’을 살펴봅니다.
달마: 중국 선종의 시조, ‘벽관’과 교외별전
달마(達磨, ~530)는 인도에서 온 고승으로, 중국에 선종(禪宗)을 전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남북조 시대 후량(後梁) 무제 때 중국에 도착했으며, 사상과 수행 면에서 기존의 교리 중심 불교와는 전혀 다른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달마의 가르침은 ‘교외별전(敎外別傳)’, 즉 경전을 넘어서 마음에서 직접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는 철학을 핵심으로 합니다.
달마의 수행법으로 대표되는 ‘벽관(壁觀)’은 말 그대로 벽을 마주 보고 앉아 사유와 명상에 잠기는 수행입니다. 그는 수도승들이 지나치게 경전에 의존하거나, 형식적 율장에만 머무는 것을 비판하며 ‘직지인심 見性成佛(直指人心 見性成佛)’—"마음을 곧장 가리키고, 본성을 보면 곧 부처가 된다"—는 선종의 핵심 명제를 제시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가르침은 중국 내에서 바로 주류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후대에 이르러 혜가, 승찬, 도신, 홍인, 혜능 등으로 이어지는 선종의 정통 6조 계보를 형성하며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혜능의 남종선이 본격적으로 발전하면서 달마는 '선종의 초조(初祖)'로서 불교사에 확고히 자리 잡습니다.
혜량: 한국 선종의 싹을 틔운 고승
혜량(慧亮, 526~603)은 고구려 출신의 승려로, 삼국시대 한국불교에서 선종적 수행을 최초로 전파한 인물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정확히 ‘선종’이라는 종파명이 성립되기 전이지만, 혜량은 달마계 수행 전통을 고구려에 소개하며 선종 수용의 토대를 놓았습니다.
그는 백제의 위덕왕 초청을 받아 활동하다가 신라 진흥왕 시대에 귀화해, 국통(國統, 최고승직)에 임명됩니다. 혜량은 실천 중심의 선풍(禪風)을 강조하며 교리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수행법을 설파했습니다. 특히 ‘관심법(觀心法)’—마음을 관찰하고 번뇌를 끊는 직관적 수행법—을 가르치며 기존의 교학 불교와 차별되는 선적 전통을 강조했습니다.
비록 그의 사상은 당대에 선종이라는 이름으로 정착되진 않았지만, 이후 도의가 당나라에서 혜능의 남종선을 받아들이고 한국에 본격 선종을 전파할 수 있었던 기반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혜량은 한국 선불교의 싹이 되는 ‘예비적 선종’의 계보로서 상징성을 지니는 인물입니다.
선종 철학의 차이: 중국의 파격 vs 한국의 수용과 통합
달마의 선종은 중국에서 매우 급진적이고 파격적인 철학으로 등장했습니다. 교리를 거부하고, 깨달음을 최우선으로 삼으며, 형식과 권위, 경전의 권위까지 도전하는 이 사상은 당시 불교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혜능의 등장 이후에는 ‘돈오(頓悟, 문득 깨닫는 것)’가 선불교의 정체성으로 자리잡으며, 중국 내에서 교종과의 격렬한 논쟁을 낳기도 했습니다.
반면, 혜량을 통해 선풍이 유입된 한국에서는 보다 온건하고 통합적인 방식으로 선종이 수용되었습니다. 혜량은 선풍을 전파하면서도 기존의 교리나 율장을 배격하지 않고, 실천 중심 수행의 강조라는 선에서 조율했습니다. 이는 한국불교의 특징인 ‘화쟁(和諍)’ 정신과도 이어지는 부분으로, 이후 원효, 의상, 지눌 등의 철학에서도 통합과 융합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됩니다.
즉, 달마는 ‘불교의 해체와 재구성’을 시도한 급진적 창조자라면, 혜량은 ‘선풍을 기존 전통 속에 이식한 조화로운 전달자’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차이는 이후 한중 불교의 수행 철학 전개 양상에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달마와 혜량은 선종이라는 수행 전통의 출발점에서 각기 다른 길을 열었습니다. 달마는 교리를 뛰어넘는 직관적 깨달음을 주장하며 선종의 철학적 기반을 세웠고, 혜량은 그 정신을 한국불교 속에 조화롭게 심어 선종이 한국에서 꽃피울 수 있는 토양을 만들었습니다. 두 인물의 비교를 통해, 우리는 선종이 단순히 하나의 종파가 아니라 각 지역의 사상, 문화, 수행 전통과 어우러져 독자적으로 전개된 철학 체계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후 도의, 지눌, 혜심으로 이어지는 한국 선불교의 맥락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이 두 인물의 역할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