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청도의 깊은 산골짜기, 운문산 자락 아래에 천천히 숨 쉬듯 자리 잡은 고찰 운문사(雲門寺). 신라시대 창건된 이 사찰은 천 년을 넘게 이어온 불교 전통과 함께, 지금도 한국 최대의 비구니 승가대학을 품고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번잡한 도심과 거리를 둔 운문사에는 세속의 시끄러움보다 고요함이 있고, 복잡한 생각보다 단순하고 깊은 울림이 있다. 사찰이라는 공간이 주는 물리적 의미를 넘어, 정신적 쉼표가 되어주는 그곳, 운문사의 깊이를 지금부터 함께 들여다보자.
천 년 역사를 품은 고찰의 숨결
운문사의 창건 시기는 신라 진흥왕 21년(560년)으로, 승려 원광법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사찰의 이름은 대작관음사였으나, 이후 ‘구름이 문을 열었다’는 뜻의 운문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사찰의 위치 또한 의미심장하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협곡에 위치하여 자연의 품에 안긴 듯한 지형이며, 전통적인 사찰 입지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곳이다.
운문사는 조선시대 이후에도 계속해서 명맥을 이어왔고, 특히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여러 차례 재건과 수리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찰 고유의 정신성과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어 왔다. 대웅전, 명부전, 범종루 등 전각은 소박하면서도 견고한 전통미를 간직하고 있으며, 특히 국보로 지정된 운문사 승탑(국보 제678호)은 한국 석조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계절마다 다른 표정을 지닌 운문사의 풍경은 방문객에게 자연과 전통이 공존하는 조용한 감동을 준다. 봄철이면 매화와 벚꽃이 피어나고, 여름엔 푸른 숲과 계곡이 시원하게 맞이해준다. 가을엔 단풍으로 물든 산사가 되고, 겨울엔 눈 속에 잠긴 선처럼 고요해진다. 이 사찰은 단순히 ‘볼거리’를 제공하는 장소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신을 비워낼 수 있는 장소다.
비구니 수행의 중심지, 운문승가대학
운문사가 다른 사찰들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점은 바로 ‘비구니 수행’의 중심지라는 점이다. 운문사에는 현재 국내 최대 규모의 비구니 승가대학이 있으며, 이곳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수십 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엄격한 율장 공부와 참선을 수행 중이다.
운문승가대학은 현대 불교의 여성 수행 전통을 이어가는 핵심 공간이자, 실제로도 가장 체계적인 불교 교육기관으로 평가받는다. 여승들은 정해진 생활 규칙을 철저히 따르며 매일같이 새벽 예불, 경전 공부, 발우공양, 참선 등의 일정으로 하루를 보낸다. 이 일상은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거나 낯설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정신적 집중과 깊은 수련이 존재한다.
운문사에서는 이러한 삶의 일부를 외부인들도 경험할 수 있도록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명상, 산책, 스님과의 대화 등을 통해 일상에서 벗어난 ‘쉼’의 시간을 갖는 이들은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쉽게 잊을 수 없는 감정을 갖고 돌아가곤 한다. 사찰의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운문사 가는 길, 머무는 마음
운문사는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청도 읍내에서 약 30~40분 정도 차량으로 이동하면 도착할 수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청도에서 버스를 타고 ‘운문사 입구’ 정류장에서 하차 후 도보로 20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천천히 걷는 여정도 하나의 즐거움이 될 수 있다.
입구에서부터 이어지는 숲길은 사찰로 향하는 여정 자체가 하나의 ‘참선’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사찰에 다다르면 흙 내음과 나무 향이 먼저 맞이해주고, 멀리서 들려오는 목탁 소리는 이곳이 여전히 수행의 공간임을 상기시킨다. 방문객 중에는 단순히 여행이 아니라, 조용한 내면을 마주하러 오는 이들도 많다. SNS에 흔하게 올라오는 풍경보다, 이곳의 진짜 매력은 ‘멈추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점에 있다.
운문사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하루는 얼마나 고요한가요?” 삶의 소음 속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다면, 운문사는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 되어줄 수 있다. 역사, 수행,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진 이 공간은 오랜 시간 동안 그러했듯, 앞으로도 많은 이들의 마음에 조용한 울림을 전할 것이다.
결론: 운문사는 단순한 사찰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도 수행과 배움이 계속되는 살아 있는 전통이며, 현대인에게 필요한 정신적 피난처이기도 하다. 북적이지 않아 더 좋고, 말이 없어도 마음이 전해지는 곳. 운문사는 어쩌면 ‘조용히, 깊게’ 삶을 생각하게 해주는 우리의 숨겨진 보물 같은 공간이다.